외교 언어의 자동화가 불러온 새로운 위험
자동화 외교 시대, 오해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국제 외교의 세계에서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이 아니라 국가의 의사와 입장을 정교하게 표현하는 핵심 도구입니다. 외교문서 한 문장의 뉘앙스 차이가 국가 간 신뢰를 강화하기도 하고, 반대로 외교적 갈등을 촉발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외교 분야에서는 오랫동안 인간 번역가와 외교관의 언어적 판단이 절대적인 중요성을 지녀 왔습니다. 그러나 최근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으로 외교 현장에서도 AI 번역 시스템의 활용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실시간 회의 통역, 외교 전문 초안 번역, 다자 회의 자료 처리 등에서 AI 번역은 효율성과 속도 면에서 큰 장점을 제공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시스템이 완벽하지 않으며 오류가 발생했을 때 그 결과가 단순한 오해를 넘어 외교적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 글에서는 AI 번역 시스템의 오류로 외교문서가 오해되었을 경우 국제법상 책임은 누구에게 귀속되는지, 그리고 기존 국제법 체계가 이러한 새로운 위험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심층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외교문서의 국제법적 성격
외교문서는 국제법상 국가의 공식 의사표시로 간주됩니다. 조약 초안, 공동성명, 외교 각서, 공식 서한 등은 모두 국가의 입장을 대외적으로 표명하는 수단이며 그 내용은 법적·정치적 효과를 발생시킬 수 있습니다. 특히 조약 해석에 있어 문언은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하며, 표현의 정확성은 국제법적 분쟁의 핵심 쟁점이 되기도 합니다.
국제법은 외교문서의 작성과 전달에 있어 국가의 책임을 전제로 합니다. 문서가 어떤 방식으로 작성되었는지, 내부적으로 어떤 절차를 거쳤는지는 원칙적으로 국제법의 직접적 고려 대상이 아닙니다. 외부에 공식적으로 전달된 문서의 내용이 곧 국가의 의사로 간주됩니다. 이러한 구조는 AI 번역 시스템이 개입하는 경우에도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습니다. 번역 수단이 인간이든 인공지능이든 국제 사회는 그 결과물을 국가의 공식 입장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AI 번역 오류의 법적 성격
AI 번역 시스템의 오류는 기술적 문제로 보일 수 있지만 국제법적 관점에서는 국가 행위의 일부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외교문서에 사용된 AI 시스템은 국가 기관 또는 국가의 통제를 받는 주체가 활용한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국제법상 국가 책임 이론에 따르면 국가 기관의 행위뿐 아니라 국가가 선택한 수단과 방법으로 발생한 결과 역시 국가에 귀속될 수 있습니다. AI 번역 시스템은 독립된 법적 주체가 아니라 도구에 불과하므로, 오류 자체가 인공지능의 책임으로 분리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외교문서 번역 과정에서 AI 오류가 발생하여 상대국이 문서를 오해하게 되었다면 원칙적으로 그 책임은 문서를 발신한 국가에 귀속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의도 없는 오류와 국제법상 책임
외교 분쟁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의도입니다. 그러나 국제법상 책임은 항상 고의나 악의를 전제로 하지 않습니다. 과실이나 부주의로 인한 결과도 국제법적 책임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AI 번역 오류는 대부분 고의가 아닌 기술적 한계나 학습 데이터의 편향에서 발생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해당 시스템의 한계를 인식하면서도 중요한 외교문서에 활용했다면 이는 주의 의무 위반으로 평가될 여지가 있습니다. 특히 민감한 외교 문서에서 AI 번역 결과를 검증하지 않고 그대로 공식 문서로 사용했다면 이는 국가의 관리 책임 문제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국제법은 국가가 자신의 행위로 타국에 중대한 혼란이나 손해를 초래하지 않도록 주의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봅니다.
상대국의 신뢰 보호와 해석 문제
외교문서 해석에서 중요한 원칙 중 하나는 신뢰 보호입니다. 상대국은 전달된 문서가 발신국의 진정한 의사를 반영한다고 합리적으로 신뢰할 권리가 있습니다. 따라서 번역 오류로 인해 의미가 왜곡되었더라도 상대국이 그 문서를 그대로 이해하고 행동했다면 그 책임을 전적으로 상대국에 돌리기는 어렵습니다.
국제법상 조약 해석에서도 문언의 통상적 의미가 우선적으로 고려됩니다. 만약 AI 번역 오류가 포함된 문서가 공식 텍스트로 채택되었다면 이후 발신국이 번역 오류를 이유로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AI 번역은 외교적 편의성을 제공하는 동시에, 국가의 언어 관리 책임을 오히려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AI 개발사와 국가 책임의 분리 문제
일각에서는 AI 번역 시스템을 개발한 민간 기업의 책임을 문제 삼을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됩니다. 실제로 AI 시스템의 설계 결함이나 알고리즘 오류가 문제의 근본 원인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국제법의 관점에서 보면, 외교문서와 관련된 책임은 원칙적으로 국가 간 문제로 다뤄집니다. 민간 기업은 국제법의 직접적 주체가 아니며, 외교문서의 법적 효과를 발생시킨 주체도 아닙니다.
국가는 필요하다면 국내법이나 계약 관계를 통해 AI 개발사에 대한 책임을 추궁할 수 있지만 이는 국제법상 책임 귀속과는 별개의 문제로 취급됩니다.
분쟁 발생 시 국제적 해결 방식
AI 번역 오류로 인한 외교적 오해가 분쟁으로 확대될 경우, 국제 사회는 우선 외교적 협의를 통한 해결을 선호합니다. 문서의 진정한 의도를 설명하고 오류를 수정하며, 신뢰 회복을 시도하는 것이 일반적인 대응 방식입니다. 그러나 문제가 조약 해석이나 국제 의무 이행과 직접적으로 연결될 경우, 국제 사법 절차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 과정에서 AI 번역 오류는 책임 감경 사유로 고려될 수는 있지만 책임 자체를 완전히 부정하는 근거로 작용하기는 어렵습니다.
마무리하며
AI 시대의 외교 책임은 더욱 무거워집니다
AI 번역 시스템은 외교 실무의 효율성을 크게 향상시키고 있지만 국제법적 책임 구조를 변화시키지는 않습니다. 외교문서의 내용과 그로 인한 결과는 여전히 국가의 책임으로 귀속됩니다. AI 번역 오류는 기술의 문제이기 이전에 관리와 선택의 문제입니다. 국가는 AI 시스템을 활용함에 있어 그 한계를 인식하고 중요한 외교 문서에 대해서는 충분한 검증 절차를 거쳐야 할 국제법적 책임을 부담합니다. 앞으로 외교의 자동화가 더욱 확대될수록 국가는 기술 활용의 편리함과 함께 그로 인한 법적·외교적 위험까지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AI는 외교를 대신하지 않으며 책임 역시 인간과 국가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이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참고자료
본 글은 국제관습법상 국가 책임 원칙, 외교문서의 법적 성격에 관한 국제법 이론, AI와 국가 행위 귀속 문제에 관한 국제법 학계의 일반적 해석을 종합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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